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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이에서 비밀의 가치

category 자아성찰 or 잡생각 2020. 11. 16. 02:15

내일 6시에 일어나야하는데, 자기 전 글이나 하나 쓰고 자야지. 의식의 흐름으로 간다.

 

예전 언제였더라...2018년 2학기가 아니라 2019년 1학기지. 지금은 멀어진 동아리 애가 나한테 한 소리가 있다.

 

'저번에 형이 나한테 한 말 엄청 공감간다.'

 

기억이 안났다.

 

'무슨 말???'

 

놀라했다.

 

'술먹고 한 말. 기억 안나??'

 

기억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는데, 내가 더 안캐면 말 안해줄 것 같았다.

 

'아 뭐지...빨리 말해줘!!'

 

'비밀은 3개월 안간다는 말. 3개월 뒤면 비밀의 가치가 떨어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밀 지켜줄 필요를 못느낀다는 거말이야'

그 때 당시 한창 비밀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때였다. 궁금한게 있어도, 동아리에 뭔 소문이 퍼져도 사람들에게 안물어봤다. 비밀스러운 얘기가 오고간 직후에는 비밀의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말해준 사람이 신신당부하기도 했고, 말하면 좋을게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여기에 이런 글귀가 하나 추가된다면?

1년 전 고민 뭐였는지 기억 나는가? 난 안난다. 고민, 시간 지나면 별 것 아니게 되거든. 비밀도 마찬가지다. 초반에는 정말 사람들이 비밀 잘 지켜준다. 엄청 중요한 것을 나만 안 것 같거든.

 

하지만 1년도 아니다. 3개월만 지나면 비밀은 비밀로서의 가치가 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 지나고 나니 그 일 별거 아니던데

- 이미 알 사람 다 알지 않나??

- 어차피 다른 애들이 말해줄텐데, 내가 거절해서 말 뚝 끊어야하나?

 

당시에 희소성이란 가치가 있던 비밀. 시간이 지날수록 비밀은 부담이 된다. 희소성은 떨어지고 마음의 부담은 늘어난다.

 

누구나 남의 비밀때문에, 나에게 별 중요하지 않은 사실로 부담지는 것을 싫어한다. 누군가 물어봤을 때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면, 의도치 않게 그 사람이 서운해할 것이다. 남의 일 때문에 내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쌓이다 보면 부담은 커질 수 밖에.

 

그래서 보통 3개월 뒤에 물어보면 술술 나온다. 놀라는 애들도 있다. 아직까지 몰라? 하면서.

 

 

남의 비밀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비밀을 지키는 것도 그렇다. 경우에 따라 다른 패턴이 적용된다. 당시 나에게 심각한 일이었어도, 시간이 지나고 점점 무뎌지기때문에 비밀을 말해주는 케이스가 하나. 이건 앞이랑 같지.

 

다른 하나는 고해성사하고싶은 인간의 심리가 작용하여 무의식적인 힌트를 던지는 케이스다. 이 케이스는 본인이 잘못을 저질렀고 죄책감이 있을 때다.

 

죄책감은 엄청난 마음의 부담을 준다. 혼자서 끙끙 앓을 정도다. 차라리 털어놓고 누군가가 나에게 욕하는 방식으로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무의식적으로 조금씩 힌트를 던진다. 절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 발견해주길 원하는 것에 가깝다. 대화 맥락상 갑자기 안맞는, 이상한 발언이나 질문들은 대부분 마음의 엄청난 부담감때문에 나온다. 힌트를 던지는 것이다. 눈치빠른 사람들은 상대가 던진 힌트로부터 상대에게 죄책감 or 엄청난 고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나도 그랬다. 마음 속에 부담이 클 때, 죄책감이 심할 때는 잠깐 긴장을 놓쳤을 때 or 스트레스가 넘칠 때 맥락에 안맞는 아우성이나 질문, 발언을 한다.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비밀이 가치있을 때 최대한 활용한다. 친한 사람들에게는 대부분의 일들을 공유한다. 나긋나긋한 어조로. 굳이 비밀이란 단어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조와 말투, 표정으로부터 '이건 비밀이겠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남의 의견으로 만들어진 생각보단, 자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생각이 더 강하거든.

 

이러면 뭘 얻냐고? 친밀감. 서로의 비밀을 공유할 때야말로 친밀감은 급격히 증가한다. 어차피 비밀의 가치는 점점 떨어진다. 나중가서 말하면 듣는 사람도 흥미있어 하지 않는다. 오래된 일이거든. 다들 fresh 한 걸 원한다고.

 

하지만 비밀은 양날의 검이다. 공유하고자 한 사이면, 계속 공유해야한다. 한번이라도 비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면, 젠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벽을 느낀다. 당연함이 무너진다. 의식하게 된다.

 

아마 이 때부터는 젠가의 블록을 빼는데 상당히 신중해질 것이다. 재빨리 수습하지 않았다가 탑이 결국 무너진 적 있지. 아마 이젠 뭘해도 예전 그 친밀했던 관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애초에 기회도 없겠지만.

 

 

그렇기에 비밀은 잘 다뤄야한다. +9를 줬더라도 -1의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9의 의미가 퇴색되거든. 잘쓰면 금방 친해지는데 좋지만, 탑을 무너뜨리는 것도 금방이다.

 

그래서 난 남의 일에 별로 관심갖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남의 비밀을 물어봤을 때 대답안해주면 나한테 서운해하거든. 모르면 서운해하진 않는다. 이 것 때문에 쌓아온 친밀도를 무너뜨리기 싫다.

 

내 비밀도 곧잘 말해준다. 어차피 3개월 뒤면 다 알게될거거든. 남이 말해주는 것보다 내가 말하는게 낫지. 가치있을 때 써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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